사도행전 17장 1-15절 “베살로니가와 베뢰아 선교” / 찬20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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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은 2차 선교사역 중 빌립보를 지나,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에서 한 사역을 다룹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중심으로 사역하셨듯이 바울도 회당중심으로 사역한다.
먼저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요 다음은 헬라인이라는 신학적 원리(롬1:17)에 기반한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선포와 핍박(1-9절)
베뢰아에서 복음 선포와 핍박(10-15절)
데살로니가는 당시 마게도냐의 수도였다. 이곳은 마게도냐의 모든 도시 중 가장 크고 번성한 도시였다. 이 도시는 풍부한 농산물을 동쪽 육지와 바다로 연결해 주는 전략적 위치에 있었다. 로마로 연결된 도로와 해상 무역로 사이에 위차하고 있어서 “세계적 문화센터”역할을 감당했다.
이 곳에 회당이 있고, 막강한 전파력을 지닐수 있었기에 선택했을 것이다.
회당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17:1–2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이 전에 전한 동일한 복음(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다메섹에서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9:19-22)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도 예수님을 전했습니다(13:16-41)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이번 세미나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그 예수님이 약속을 이루십니다.
이 복음이 “실증난데요”, “지루하데요”, “또 그소리…”
베뢰아에서도 동일하게 회당에서 예수를 전합니다. 이 곳의 반응을 봅시다.
사도행전 17:10–11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너그러워서- 집안이 좋아서, 마음이 좋아서,
간절한- 간구하는(기도, 마음)
상고하므로…-상세히 연구하다(아나크리노,헬) / 한번 사용됨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동일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였습니다.
동일한 복음이 동일한 능력으로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같습니다
사도행전 17: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마태복음 13:14–15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럼에도 여전히 복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고, 상고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복음에 반대하였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 교회만 훼방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베뢰아까지 와서 믿음의 공동체를 소동합니다.
사도행전 17: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참 안타깝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도움이 되는 사람이 아닌 해방하는 사람으로 기록되는 데살로니가 유대인입니다.
때에 따라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훼방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씨뿌리는 비유 다음에 하신 주님의 비유를 보면…마태복음. 13.장으로 넘어가 볼까요?
마태복음 13: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여, 가라지를 어떻게 할까요? 주여 훼방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13:29–30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두라…추수할 때…거두리라.
이 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에 대한 선한 열매도 있고 그릇된 가라지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한국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도 그랬어요.
유대인 회심자도 있지만 방해자도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잘한자는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칭찬하시며,
두라…”거두어 불사르게”할 것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 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이들이 바울과 실라를 , 교회를 방해하지만, 초대교회는 이 시대 하나님 나라는 확장될 것입니다.
“땅 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그 말씀을 붙드는 이 시대의 바울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저와 여러분의 오늘의 삶이 이 증거가 됩시다.
또한 갈라치기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그들을 사랑합시다. 주님의 때에 회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나아갑시다.
부르짖으며 나아갑시다. 주여 불사름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